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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활

[마당에 체리 키우기] 사연 깊은 체리발아부터 모종심기까지, 그리고 2년 뒤

by 한초-리 2020. 5. 22.

체리와의 만남은 욱하는 마음에서 생겨났다.

 

욱하는 마음에 시작된 체리 키우기를 통해 내가 얻은 게 하나 있다면, 무언갈 보살핀다는 건, 그게 무엇이든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약속과 같다고 생각했다.

(양육에 대한 두려움도 아마 이때부터 짙어진 것 같다)

 


체리와의 만남,  

 

18년 늦 봄,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광주 변두리에 있던 시골 부모님 집에 쉬며,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하나'와 같은 깊은 고민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반성과 미래에 대한 소박한 계획들을 하던 날들이었다.

 

 

물톨을 들고 있는 한초리

하루는 시내에 친구를 보러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마트에 잠시 들러 집에 가지고 들어갈 과일을 고르고 있던 찰나였다. 한 모녀가 과일 코너에 다가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 : 어서 골라봐

딸 : 체리 먹자, 엄마가 체리 좋아하잖아.

엄마 : (체리 가격을 살핀다) 딸기 먹자, 너 좋아하잖아. 체리는 비싸, 나중에 먹자. 어서 집어 들어, 빨리 집에 가자.

6살, 7살쯤이었나,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건포도를 좋아했던 나는 달달하고 찐하게 올라오는 그 맛을 좋아했는데, 좋아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어머니의 입맛을 따라간 것뿐이었다. 늘 어머니에게 건포도를 사달라고 때를 쓰면, 어머니는 늘 '나중에~'를 말씀하셨고, 그 말은 사줄 수 없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비싸서'

내가 그럼에도 사달라고 옹알거린 건, "엄마가 좋아하니까"

 

나는 그 체리에게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괘씸하게 비싼 체리가 뭐라고, 아이와 엄마에게 서운함을 주고 돌아서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건포도에 대한 복수심이었던 것 같다. 그 복수를 핑계 삼아 괜한 체리에게 화풀이 한걸 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체리 발아 시키기,

 

 

그릇에 담긴 체리

사 왔던 체리를 전투적으로 먹은 뒤,

씨앗을 잘 씻어서 반양지에 말려뒀다(간접광)

속씨를 빼낸 모습

 

씨앗이 마르면, 겉껍질을 깨야하는데, 뺀치 혹은 니퍼와 같은 공구로 조심스럽게 힘을 줘 가며 누르면 속 씨앗이 보인다. 그 씨앗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아래 사진처럼 적당히 넓은 접시에 화장솜을 올려두고, 물을 적신 뒤 체리를 2~3cm 간격으로 떨어트려 두고, 랩으로 접시를 덮어둔다. 이후 이쑤시개나 젓가락으로 구멍을 한 두 개 만 뚫어두면 끝. 

 

 

(구멍이 있어야 적당한 수분 조절이 된다. 한여름같은 경우, 체리가 발아하다가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므로 하루 두번 체리 상태를 확인해줄 것.)

 

 

발아준비가 된 체리씨

 

 

잎이 나오고 있는 체리 씨

 

하루 이틀 뒤, 복수심이 뭔지 잊을 정도로 새하얗고 수줍은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왜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뿌리가 나오는 체리 씨

 

 

그 후로 이틀이 더 지나자 짧은 뿌리 하나를 만들어 냈는데, 여기서부터 복수심은 모두 사라지고, 생명이 어떻게 얼마나 귀할 수 있는지, 왜 많은 현자들이 생명은 존재 자체로 귀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건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정말로!!

 

 


체리 심기,

 

 

흙에 옮겨 심은 체리

 

안타깝게도 다른 씨앗들은 발아하지 못하여 모두 밭에 뿌려줬고, 이 한 아이를 작은 봉분을 만들어 그 위에 심어주었다. 

[봉분 높이 10~15cm, 지름 20cm 내외] 봉분이 없이는 수분 조절이 어렵다고 들었다.

호두과 나무이기에 추위에도 강하고 거친 땅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모마음은 언제나 내 아이에게 좋은것만 해주고 싶지 않은가? :)

 

 

 

 

잎을 틔우는 체리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잎을 틔우고 있다.

 

두개의 잎이 난 체리
3개의 잎이 난 체리
잎이 커지고 새 잎도 나는 체리

 

 

한여름, 제법 잎을 크게 키웠다. 기특하고 장하다.

 

 

10cm 이상 자라난 체리
20cm 이상 자란 체리
가을을 맞이한 체리
겨울준비가 된 체리

 

 

 

 

일 년이 지난 뒤, 체리는 딱 작년 키의 두배만큼 자랐다. :)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볼 때마다 마음이 행복해진다.

 

 

다음해 봄 새잎을 틔운 체리
30cm이상 자란 체리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체리가 나와 키를 겨루고 있다. :)

 

 

내 키만큼 자란 체리

 

 

 

내 키보다 더 큰 체리

 

 

2018. 5. 18

체리의 생일이다.

 

체리는

5.18 국립묘지 가는 길,

길가에 배롱나무 여러 그루 놓여있는 마을에 산다.

 

어떤 모양으로도 좋으니,

열매 따윈 바라지 않으니,

 

 

깊은 뿌리를 갖고 꾸준히 힘껏 자랐으면 좋겠다.

나도, 체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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